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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기고

필요해UD universal Design Issue vol.5

우리 주거와 생활 속에 스며든 증거기반의 유니버설디자인
미래 사회의 보편적인 기준을 이야기하다

최 령
서울특별시 유니버설디자인센터장

  우리가 살고 있는 주택과 그 기반이 되는 생활환경을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계획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전문가에게 물어보면 모두 ‘유니버설디자인’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럼 주거 또는 생활환경에 필요한 유니버설디자인은 과연 무엇일까요?

  제주도에 가면 계단식 저층 주택을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식 주택으로 리모델링한 임대 단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사업으로 인한 눈에 띄는 변화를 소개하자면, 과거 단지 내 빈집 대부분은 4~5층이었는데, 이제는 1~2층에 빈집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리모델링 전에는 4~5층의 거주하시던 거동이 불편한 노인분들이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해 집안에 갇혀 계시다시피 하셨지만 이젠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아도 엘리베이터로 층간 이동이 가능해져서 이왕이면 전망도 즐길 수 있는 높은 층을 선호하는 추세로 변화했다는 것입니다.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건물을 수직이동 구조로 개조하는 과정이 쉽지 않은 작업인 만큼 아직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5층 이하 임대주택 단지가 전국에 남아있다고 합니다. 또한 주동(건물) 단위의 수직이동은 그런대로 해결이 되었지만 각 동에서 단지 내부를 연결하는 보행로 에는 아직도 단차와 경사가 많이 남아 있어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완벽하게 안전한 장소라고 하기에는 어렵습니다.

계단을 통해 출입하는 구조의 저층 임대주택

계단을 통해 출입하는 구조의 저층 임대주택

복도 측에 새로 설치한 계단과 경사로
(좁은 부지 여건으로 경사가 다소 가파르게 시공되어 있다.)

복도 측에 새로 설치한 계단과 경사로
(좁은 부지 여건으로 경사가 다소 가파르게 시공되어 있다.)

1개동 1개소의 엘리베이터 설치
(계단식 구조 대비 층간 이동의 편의성이 향상되었다.)

1개동 1개소의 엘리베이터 설치
(계단식 구조 대비 층간 이동의 편의성이 향상되었다.)

리모델링한 주동 전경
(출입구가 3개소로 분리된 계단식 구조에서 출입구 1개소와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식 구조로 개조하였다.)

리모델링한 주동 전경
(출입구가 3개소로 분리된 계단식 구조에서 출입구 1개소와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식 구조로 개조하였다.)

유니버설디자인 체험관 이웃 i-UT 미리보기 영상

건물의 내외부에 단차가 없는 구조로 조성된 마령활력센터
(2022년 서울 유니버설디자인 대상 공공부문 대상 수상작. 센터가 위치한 곳은 농촌의 면 단위 지역이다.)

  이처럼 주택·건축물의 노화 혹은 시간의 경과에 따른 대응방안은 계획 단계에서부터 고려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입니다. 그래서 최근 농촌에 세워지는 규모가 있는 건축물은 비록 2층일지라도 엘리베이터 설치를 의무화 하고 있고, 마을안길이나 경로당 등의 출입구 나 내부공간 등에 유니버설디자인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노인인구 비율이 높은 농촌에서는 이런 유니버설디자인의 도입이 이젠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계단과 엘리베이터

마령활력센터 엘리베이터
(2층 건물 내에 노약자의 안전한 이동과 활동을 고려하여 설치되었다.)

주차장 안전보행통로

마령활력센터 중정과 2층 전경
(중정을 낀 복도형 동선으로 1개소의 엘리베이터로 2층의 각종 프로그램실을 연결한다.)

  초고령국가인 일본은 1995년부터 장수사회 대응 주택설계지침을 통해 ‘무장애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유니버설디자인 주택의 보급과 변경을 지원하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2000년 이후 지어진 고령자 거주 주택의 70%에서 무장애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최근 호주의 몇몇 연방정부에서는 주택의 유니버설디자인 적용을 의무화하였습니다. 왜 이들 국가에서는 유니버설디자인을 도입하고 있을까요?

  호주의 주택 건축시 유니버설디자인 적용 의무화 이유를 보면, 먼저, 유니버설디자인 적용을 위한 리모델링 비용이 초기 건설 비용보다 훨씬 많이 들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거주기간 동안 안전사고의 예방은 물론, 노화에 따른 돌봄과 의료비 등 사회적 비용의 절감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UD 65세 이상의 세대원이 있는 주택의 무장애화 현황
(출처: 일본 고령자주택협회 '고령자의 거주현황' 통계 (2022))

65세 이상의 세대원이 있는 주택의 무장애화 현황
(출처: 일본 고령자주택협회 '고령자의 거주현황' 통계 (2022))

1. 유니버설디자인 패러다임의 대두

  유니버설디자인이란 인간의 능력은 특별하지 않고 평범하다는 믿음에 근거하여 일시적인 취향이나 유행이 아닌 지속적인 디자인의 접근법으로, 이를 통해 디자인이나 설계 과정에서 흔히 간과하는 장애인, 노인, 어린이 및 기타 인구가 직면하는 장벽, 혹은 불편을 해결하여 ‘낙인’을 줄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혜택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를 주택에 적용하면 다양한 사람들이 직면하는 장벽 혹은 불편함을 제거하거나 최소화하여 누구라도 편리하고 안전하게 오랜기간 생활할 수 있는 주거환경이 됩니다. 각 거주자들의 눈높이 에서 바라본 주거환경 요구사항 중 일부를 살펴볼까 합니다.

  먼저, 우리 대부분은 나이 들어감에 따라 거동이 불편하거나 건강이 약해져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인의 주거는 “나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건강하고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대명제입니다. 따라서 주거환경에서는 거동이 불편하거나 건강이 약해져도 최소한의 돌봄 지원으로 불편없이 안전하게 거주 및 생활가능한 주거환경을 구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사소한 턱에 이르기까지 단차를 없애거나 최소화하고, 필요한 곳에는 손잡이 등을 설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눈이 침침해지거나 청력이 떨어지는 경우에 대비해 잘 보이고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조명과 방음이 이에 해당됩니다.
이렇게 노인이 돌봄 지원 없이 최대한 건강하고 안전하게 생활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부담, 특히 미래세대가 짊어져야 하는 부담을 낮추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최근 한 연구에서는 고령친화 생활마을 조성을 통해 노인요양시설이나 요양병원으로의 입소 · 입원을 방어하여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 절감액은 2조 190억원, 국민건강보험 비용 절감액은 약 1조 3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 고령친화 생활마을 조성 모델 및 정책 개선 방안 연구. 건축공간연구원, 2022)

다양한 디자인의 안전 손잡이1
다양한 디자인의 안전 손잡이2
다양한 디자인의 안전 손잡이3

다양한 디자인의 안전 손잡이
(문틀이나 공간과의 경계에 발생하는 단차를 없애고 낙상 예방을 위한 적절한 위치에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으로 설치되었다.)

  두 번째로, 아이들은 안전한 환경에서 자유롭게 뛰어놀고 탐구할 수 있어야 하고, 육아기 부모에게는 아이를 키우는 부담이 저감되는 주거환경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많은 연구논문과 저서에서 아이를 키우기 좋은 주거환경을 만드는 조건으로 유니버설디자인을 들고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스스로 역할을 하면서 자긍심을 키우는 것과 안전하게 아이들을 보호하는 측면에서 이야기 합니다. 아이도 쉽게 끄고 켜는 조명 스위치의 높이, 손끼임을 방지하는 문, 추락을 예방하는 발코니 난간 등이 해당됩니다.

80㎝~90㎝까지 높낮이 조절가능 작업대

80㎝~90㎝까지 높낮이 조절가능 작업대

  아이를 키우는 세대에게는 아이를 돌보면서 가사를 동시에 할 수 있거나, 가사의 전반적인 부담을 줄이는 작업공간의 배치와 형태 등에 있어서 유니버설디자인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또 키 차이가 많이 나는 부부가 부엌에서의 작업을 공동으로 부담할 경우, 작업대의 적절한 높이는 어디에 맞추면 좋을까요? ‘키가 큰 사람 아니면 작은 사람, 아니면 중간높이?’. 오랜 기간 제가 고민해서 제안하는 답은 작업대 일부만이라도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가구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엌에서의 작업이 조금은 수월해 져서 이에 따르는 스트레스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부엌 작업대1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부엌 작업대2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부엌 작업대3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부엌 작업대(80㎝~90㎝)에서 높이에 따라 변화하는 자세
(낮은 작업대 높이는 장시간 작업시, 허리에 많은 부담을 줄 수 있다.)

  또, 장애인과 그 가족의 거주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장애의 유형에 따라 일상 생활에서 겪는 여러 모습의 불편함은 디자인적 접근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휠체어 사용자라면 스스로 이용할 수 있는 욕실, 부엌 등을 기본으로 출입구의 폭, 단차를 해소한 바닥 마감이 필요합니다. 색약인이 진행과 멈춤을 나타내는 빨강과 초록을 비슷한 색으로 인지하지 않도록 색의 대비와 패턴을 적용하고 시·청각 등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안내 혹은 장치 등으로 장애에 따른 불편을 최소화시키는 설계를 고려해야 합니다.

  이러한 설계는 장애인 당사자 뿐만 아니라 노인이나 어린이, 임산부 등 일시적으로 건강상의 불편을 겪는 사람들도 쉽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합니다. 다시 설명하면 장애인도, 함께 사는 가족도, 아니면 이 집에 다른 가족이 살게 되더라도 불편하지 않도록 계획하는 것입니다.

아래설명참조

고대비 컬러를 활용하여 저시력자, 색약(맹)인이 정보를 쉽게 구별하고 인지하도록 계획한 LH 공동주택 사례

아래설명참조

신호등의 가고 멈춤을 의미하는 적색과 녹색이 적·녹 색맹인에게는 구별이 어렵다.
(Kazunori Asada의 색각 시뮬레이터 앱 사용)

아래설명참조
아래설명참조

성인용 기저귀 교환대를 비롯해 장루·요루용 전용변기 등을 갖추거나, 유아용 기저귀 교환대와 아기 의자 등을 갖춘 다목적 화장실 (일본)

  사례 이미지에서 보는 것처럼, 장애인의 거주가능성을 위해 확보한 화장실 4.5㎡의 여유공간은 육아기 세대의 아기 돌봄도, 노인 세대의 노인 돌봄도 가능하게 하는 여유공간이 됩니다. 이 공간이 더 유효하려면 전체 공간에서의 비율, 인접한 공간과의 단차 해소, 출입문과의 관계 등 고민하고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매우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크고 작은 문제와 마주하면서 다양한 거주자의 행동과 요구들을 모두 수용하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하기에 최선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유니버설디자인이기도 합니다.

아래 설명 참조 아래 설명 참조

적정 크기의 욕실은 휠체어 사용자와 노인 당사자는 물론, 육아기 세대와 돌봄 종사자도 불편없이 이용할 수 있다. (서울시 유니버설디자인 적용지침 – 공공주택)

  그런데 이런 설계가 가능하냐구요? “네, 가능합니다.” 그럼, 비용이 많이 드냐구요? “아뇨, 앞서 말씀드린 호주의 사례처럼 계획시 조금 더 투입한 비용이, 살아가는 동안 더 많은 혜택으로 돌아오게 됩니다.”가 제가 드리는 답입니다. 특히 개인보다는 ‘국가와 사회가 부담하게 되는 비용절감이 휠씬 크다’가 많은 연구에서 주고 있는 답입니다. 그래서 법과 제도로서 강제와 지원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주거환경 안으로 들어와 있는 유니버설디자인 사례

  그럼, 실제로 우리가 생활하는 환경에 유니버설디자인이 도입된 건 없을까요?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편하게 사용하시면서 그것이 유니버설디자인과 관련있다는 생각을 못 해본 것들입니다. 몇가지 예를 들면 리모콘, TV나 OTT에서 제공되는 자막서비스 등이 있습니다. 이동이 불편한 분들이 직접 원격 조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리모콘, 청각장애인을 위해 제공되기 시작한 자막 서비스는 이제 여러분 모두가 편하게 사용하는 서비스라 생각됩니다. 그 외에도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여겼던 많은 부분에 유니버설디자인 접근법으로 보다 편리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의복, 화장품, 시계, 신발, 부엌용품, 가구, 스마트폰의 손쉬운 사용 기능 등 수많은 부분에서 유니버설디자인으로 변화한(저는 이것을 ‘혁신’이라 부르는) 생활용품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 살펴보는 제품 사례는 O사의 다용도 필러(감자깎이 칼)와 계량컵입니다. 이 다용도 필러는 산업디자이너로서도 유명한 페트리샤 무어(Patricia Moore)가 디자인한 것입니다. 이 칼이 페트리샤 무어에 의해 개발된 계기는 부인의 관절염으로 불편한 손에 주목한 O사 대표인 샘 파버(Sam Farber)의 관심과 사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회사는 사랑에서 태어났다고 회사의 탄생배경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유니버설디자인 관점의 사고에 기반한 O사는 여러 가지 제품을 개발합니다. 그 중 하나가 위에서도 눈금을 읽을 수 있는 계량컵입니다.

아래 설명 참조

옥소의 굿그립(Good Grip)이 적용된 다용도 필러
(적은 힘으로 감자 등의 껍질을 벗길 수 있도록 굵은 손잡이를 적용한 디자인)

아래 설명 참조

정확한 계량을 위해 사람이 움직여야 했던 불편을 디자인으로 해소한 계량컵
(위에서 내려다 보아도 정확한 계량이 가능하다.)

  또 하나는 문손잡이입니다. 기존의 둥근 손잡이는 손이 작은 아이나, 불편한 사람에게 개폐조차 어려웠지만 요즘은 잡기 쉬운 막대형 손잡이가 주로 사용됩니다. 이 손잡이가 누름과 밀고당기기의 두 동작이 필요한 손잡이로 발전하고, 최근에는 누름과 밀고당김이 한 동작으로 가능한 문손잡이로 진화하였습니다.

1개동 1개소의 엘리베이터 설치
(계단식 구조 대비 층간 이동의 편의성이 향상되었다.)
리모델링한 주동 전경
(출입구가 3개소로 분리된 계단식 구조에서 출입구 1개소와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식 구조로 개조하였다.)

다양한 형태의 문손잡이 (오른쪽 : 누름과 당김 기능이 한 동작으로 가능한 문손잡이)

  유니버설디자인은 이처럼 노인과 아동, 육아기의 청장년 세대, 장애인과 비장애인 등 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설계되고 실현되어 모든 사람의 삶을 보다 편리하고 안전하게, 그리고 풍요롭게 해 주고 있습니다.

Leave no one behind(누구도 소외되지 않기).

  어떠신가요, 이제 여러분도 유니버설디자인에 관심이 좀 생기셨나요? 그럼 여러분이 살고있는 집에서, 마을에서 적용된 유니버설디자인 사례를 찾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겠습니까?

  유니버설디자인이란 단어가 탄생되고 우리에게 소개된 것도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젠 장년으로 접어들 만큼 오래된 개념입니다. 당연히 우리의 생활 곳곳에 존재하는 것도 알게 되셨을 겁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건강한 사회구성원이나 거주자에겐 좀 불편하거나 힘든 정도인 장벽, 혹은 장애물이, 약자들에겐 할 수 없거나 아주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거대한 에베레스트 같은 존재일 수 있다는 것과 우리 사회의 인구구성이 미래엔 약자가 더 많은 사회로 변화한다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제인 주거 환경과 이를 구성하는 작은 생활용품들이 유니버설 디자인을 통해 누군가의 긴 인생의 여정을 함께 하면서 가족들과의 희노애락을 담는 그릇으로서 언제나 안전하고 편리함을 잃지 않는 모습을 갖출 수 있길, 또 이러한 가치가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일상이 되어, UN에서 이야기하는 “Leave no one behind(누구도 소외되지 않기)”를 바라봅니다.